바람같은 감상들 2018. 12. 30. 16:24
지난번 리뷰를 했었던 「13•67」은 나름 추리소설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얼마나 편협한 독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는지 알려줬고, 난 2018년도의  찬호께이의 소설을 다 읽어보겠다는 나름 ㅎ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13.67」의 충격이 채 지나기전에  「풍선인간」, 「기억나지않음,형사」를 보았고   「망내인」까지 읽었다

책날개를 보면 데뷔한지 10년정도되는 비교적 최근의 작가로 보이는데 , 사회문제를 덜 다루었다고 밝힌 풍선인간을 제외하면  그의 작품은 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1. 사회성
2.꽉 짜여진 플롯 안의 반전
 
망내인 또한 그런 작품이다.
실물 세계와 인터넷으로 연결된 세계 두 곳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그곳에서 빈번히 일어나는 폭력들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망내인」은 책  두께만큼 가볍지 않은 책이다
다른 찬호께이의 작품과 마찬가지로.


(스포일러 있습니다)














찬호께이의 여러 작품을 보며 드는 생각은 이 작가는 손이 가는대로 작품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추리소설의 특성상 곳곳에 암시가 숨겨있고  반전을 만들어야하니  손이 가는대로 수필처럼 소설을 쓰는 작가는 거의 없겠으나
가끔 여러 암시들이 해결되지 않은채로 얼렁뚱땅 넘어가거나  황급히 범인이 밝혀지고 끝나는 소설들이 더러 있는데
찬호께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책장을 덮을 때  이 작가가 이 책을 쓰기 위해 처음과 끝을 모두 계획하고 각각의 요소을 적절하게 배치하는 전략을 세운 뒤에 이 작품에 임했음을 알게된다
그래서 끝났을 때  남는 울림은 개운치않은 찝찝함이 아니라  아!이런거였나!하는 놀라움 혹은  아- 사회에 이런 문제들이 있지- 하는 깨달음이 주를 이룬다


나는 자연스럽게 스중난이 두쯔위의 오빠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두쯔위가 어우야원(+궈타이)의 피해자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스투웨이와 아녜가 연결될 것이라고도 생각도 못했다

특히 두쯔위가  어우야원(+궈타이+리리)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는 설정은 대체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명확한 선과악이라는 것이 있는지
인터넷 여론이라는것은 얼마나 만들기 간단하면서 위험한지를 생각하게했다

그리고 그런 폭력은 너무 흔하게 벌어지고 있지않은지
단편적인 기사와 조각조각 흩어져 떠돌아다니는 말들로 사람은 얼마나 타인을 쉽게 판단하고 욕하는지
그런 여러 생각을 들게했다

이 소설의 핵심인 아녜는 13.67의 관전둬같은 사람이면서 좀더 기술과 연기에 능하고 영악한 젊은이같다
하지만 둘은 모두 정의를 사랑하고 추구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둘이  해결하는 사건들의 뒷끝이 텁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생각해보니 많은 추리소설의 키맨들은 정의롭다. 정의롭지않은 사회에서  히어로같은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일까. 그러고보니 추리소설은 히어로물의 변형일지도)

아무튼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하는 찬호께이의 소설이 좋다. 영어가 짧아 원서로 그때그때 읽을수는 없지만  얼른 많은책이 나오고 많은책이 번역되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코코푸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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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같은 감상들 2018. 12. 16. 16:47


찬호께이, 강초아옮김 <13.67>, 한스미디어


회사 자료실 언니가 추천해준 책이다. 

본인은 두꺼워서 시작을 못해보겠으니, 니가 먼저 읽어보고 리뷰 좀 알려달라 하길래 그러마 하고 가져온 것이 시작이었다. 


책이 꽤 두꺼워서 시작할 마음을 먹는데 한 이틀정도 걸린 것 같았다.

하지만 홍콩을 배경한 추리소설이라니, 처음 접하는 분위기라 마음이 끌려서 책장을 열었고,

그 이후는 정말 술술 읽혔고, 집에가서 얼른 책읽고 싶어서 얼른 퇴근..아니, 평소에도 그랬지만 조금 더 빨리 얼른 당장 퇴근하고 싶게 만들었던 책 ㅎㅎ


홍콩은 아주아주 예전에 꼬꼬맹이였던 시절 잠시 다녀온게 전부라, 실제의 홍콩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책을 읽지는 못했지만 세심한 배경 묘사가 있어, 1967년부터 2013년까지의 홍콩 분위기를 상상하며 읽는 것이 어렵지는 않았다.



<이후는 스포일러 있습니다>










이 책은 2013년부터 차근차근히 과거로 거슬러올라가며 1967년까지 총 6개의 사건이 전개된다. 

과거로 향하는 전개는 마치, 사건의 근본을 찾아가는 듯한 기분을 들게 한다.

그리고, 실제로 마지막에는 그간의 사건을 아우르는 반전이 있기도 하고 말이다.


나는 추리소설을 꽤 즐겨 읽는다.

머리가 뽀개지도록 회사에서 시달리다가 집에 와서 혹은 도서관에 가서 각잡고 진지하고 어려운 책을 읽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인데,  

그만큼 추리소설은 상대적으로 다른 인문사회경제서적에 비해 책에서 이끄는 대로 그 전개를 따라가면 되고, 순간순간 인생에 대한 깊은 고민이라든지 정치사회경제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가 너무 가벼운 추리소설만을 읽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추리소설도 그 사회의 병폐라든지 어두운 면 등을 배경으로 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인 성격이 사건의 원인이나 범인들을 흥미롭게 혹은 통쾌하게 밝히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나게 읽다가 마지막 책장을 다 덮고 나면 종종 좀 허무한 기분이 들기도하기 마련이었는데

이 <13.67>은 그렇지 않아, 놀랍기도 하고 감동적이기도 했다.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작가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하고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이 책에 대한 리뷰(책 뒤의 서평)를 보면, 홍콩이라는 특수한 공간이 지닌 '슬픔'에 대해 얘기한다고 하는데 나는 홍콩이라는 배경은 이 사건과 각 전개과정에서 풍미를 더하는 요소 정도로 작용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오히려 '인간의 삶과 선택'에 대해 더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러한 인생의 아이러니들이 비단 '홍콩'에서만 특수하게 일어나는 것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주제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첫 에피소드와 마지막 에피소드에 동시에 관전둬-왕관탕-위안원빈을 배치하였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은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당연히 아칠을 돕던 아이(?)가 관던둬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특별히 경찰로 채용되어 그 통찰력으로 시민을 구하는 경찰이 되었을 것이라고.  

하지만 놀랍게도 아칠을 꾸짖던 그 아이는 나중에 친형처럼 따르던 위안원빈을 살해한(?) 왕관탕이었고, (후에 살인자가 될) 왕관탕에게 경찰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해 혼나던 아칠은 이후 각종 사건에서 놀라운 통찰력과 추리력으로 활약하던 관전둬였던 것이다.


인생에는 여러 갈림길과 수많은 선택지가 있고, 그 선택에 따라 수많은 전개가 펼쳐진다.

종종 그 선택들은 되돌이킬 수 없는 경우가 많고,

언제 어떻게 선택을 했는지도 모르게 한 자잘한 선택들과 개개인의 선택들이 쌓여 개인의 인생과 사회를 움직이기도 한다. 

모든 것은 유기적이니까. 


작가는 그 얘기를 하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위안원빈-왕관탕-관전둬-뤄샤오밍-덩팅-스번성-스번톈 등으로 이어지는 이 각각의 에피소드들을 잘 엮어, 이렇게 하나의 역사 (홍콩의 혹은 관전둬와 뤄샤오밍의)를 만들어낸 것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 추리소설 하나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니, 새로운 경험이었다.

특히, 마지막 반전을 읽었을 때 그 충격이란.




새로운 작가를 만나서 반갑고, 얼른 다른 책도 찾아봐야겠다. 




posted by 코코푸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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